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업체, 임상 3상 위해 인도네시아 간다
인구 세계 4위·감염률↑…현지 정부 적극적 의지에 임상환경도 우호적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들이 대규모 임상 3상 시험을 앞두고 인도네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임상 대상자를 구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대체 지역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임상 2상에 지입한 셀리드는 최근 인도네시아 보건당국과 현지에서 임상 3상을 수행하는 방안에 관한 화상회의를 했다. 이달 말에는 인도네시아 고위 공무원이 방한해 강창율 셀리드 대표와 임상시험 및 백신 공급에 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코로나19 백신개발
[연합뉴스TV 제공]
강 대표는 "회사 측에서 먼저 인도네시아 정부에 임상 3상 시험 의사를 전달했고, 정부 쪽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진입한 제넥신은 이미 올해 3월 인도네시아 대형 제약사 칼베 파르마(Kalbe Farma)와 함께 인도네시아 식약처에 임상 2/3상 시험계획을 제출했다.
회사는 6월에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인도네시아 대상자 1천명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3만명을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제넥신은 칼베와 인도네시아 합작 법인 'KG바이오'를 설립하고 2016년 2월 현지 공장을 개소하는 등 오랜 기간 우호 관계를 맺어온 덕에 이번 백신 임상 협력도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 업체들이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는 것은 인구와 코로나19 감염자 모두 우리나라보다 많아 백신 효과를 확인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설명했다.
비교적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잘 통제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몇만 명의 임상 대상자에게 위약과 백신 후보물질을 투여해 코로나19 방어효과를 확인해야 하는 임상 3상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2억7천여만명으로 세계 4위인데다가, 매일 신규 확진자 5천명 안팎이 추가되고 있어 백신 후보물질의 방어 효능을 확인하기 적합한 환경이다.
현지 정부도 해외 백신 임상시험 유치에 적극적이며,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임상시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는 장점도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후보물질 단계의 제넥신 백신이 긴급사용승인될 경우 현지에 즉각 공급될 수 있도록 1천만 도스(1회 접종분) 선구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제넥신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아 중국산 백신 시노백을 포함한 백신을 최대한 여러 종류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K백신 개발돼도 해외에 다 뺏길 판"…
불만 쌓일 대로 쌓였다
"K백신 개발돼도 해외로 먼저 간다"
SK바이오·제넥신·유바이오로직스·진원생명과학 등
'백신 우선공급 조건' 수천억 임상비용 해외서 조달
17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임상 1상과 2상을 진행 중인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업체는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 유바이오로직스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등 다섯 곳이다. 이들 가운데 우리 정부와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정부는 예산이 부족한 데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는 예외 없이 임상 3상 단계에서 해외 자금을 조달했거나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한 백신개발회사 대표는 “최소 1000억원 이상이 드는 임상 3상 비용의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한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우선 공급 등을 약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해외에 선공급을 약속한 회사도 있다. 임상 3상을 앞둔 제넥신은 인도네시아 제약사 칼베파르마에 1000만 회분의 백신을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칼베파르마는 임상 3상 비용을 대기로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14개국으로 이뤄진 코백스퍼실리티 산하의 전염병대응혁신연합(CEPI)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엔데믹(주기적 발병)’으로 진화하고 있어 백신 수급이 올해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산 백신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산 백신 개발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선구매 및 개발 지원 명목으로 화이자에 2조원, 모더나에 4조원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는 백신 개발 지원에 작년과 올해 1177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게다가 이 자금을 지원받아도 국내에 우선 공급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조차 두지 않았다.
백신 개발돼도 해외에 먼저 공급될 처지 왜?
#2. 코로나19 백신 임상 3상을 앞둔 한국 바이오기업 제넥신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제약사 칼베파르마에 1000만 회분을 우선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천문학적인 임상 비용을 대는 조건으로 한국보다 먼저 백신을 받기로 한 것이다. 제넥신이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93억원이 전부다.
한국산(産) 코로나 백신의 ‘탈(脫)한국’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백신 개발 업체들이 임상 3상 비용을 받는 조건으로 잇따라 해외 우선 공급에 나서고 있어서다.
정부 지원을 지렛대 삼아 코로나19 백신의 최강자가 된 미국과 대조적이란 게 국내 바이오업계의 평가다. 미국 정부는 백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 1조7010억원, 아스트라제네카 1조3608억원, 모더나 4조6494억원, 노바백스 1조8144억원, 사노피 2조3814억원, 화이자 2조2680억원 등 모두 14조1700여억원(125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백신 개발사에 지원했다. 이 중 노바백스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임상 1상 때 대규모 자금을 받았다.
모더나는 정부 지원 덕분에 백신 개발에 성공한 사례다. 임상 3상을 앞둔 작년 7월 모더나가 mRNA 백신 원료인 지질나노입자(LNP) 관련 특허 소송에서 바이오벤처 알뷰튜스에 패소했기 때문이다. 막대한 규모의 로열티를 내야 하는 만큼 모더나가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곧바로 모더나에 1조1200억원을 지원하는 동시에 특허 문제도 중재했다. 그 다음달에는 1조700억원을 들여 1억 회분을 선구매했다.
반면 한국 정부가 백신 개발사에 지원했거나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작년(490억원)과 올해(687억원) 2년간 1177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약 0.8%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5개 회사가 나눠 썼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경제 규모를 감안해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국내 백신업체들이 ‘돈 걱정’에 머리를 싸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오업계는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데만 1000억~3000억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 3상 비용을 댈 테니 백신을 먼저 달라”는 해외 제약사의 제안을 국내 백신업체들이 거부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해외업체와 손잡는 방안을 추진하는 건 제넥신뿐만이 아니다. 최근 임상 2a상 투여를 마친 셀리드도 해외 업체와 선구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셀리드 관계자는 “임상 3상 비용을 확보하는 게 백신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에 선구매를 건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코로나19 백신 개발업체인 유바이오로직스와 진원생명과학도 정부가 선구매해주지 않을 경우 해외 투자를 받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백신을 경구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삼천당제약은 2300억원의 임상 비용을 충당하고자 해외에 판권을 넘겨주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지난 6일 전염병대응혁신연합(CEPI)의 자금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를 신청했다. 백신 개발사 중 유일한 대기업 계열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CEPI의 지원을 받았다. 이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CEPI에 먼저 공급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팬데믹(대유행)’을 넘어 ‘엔데믹(주기적 발병)’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산 백신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임상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일이 있더라도 백신 원천기술이 해외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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