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가 - 정동원님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 - 정동원님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정동원님-눈물비









정동원님-보릿고개























부모 이혼후 말문 닫은 손자의 우울증 치료 위해

색소폰 등 악기와 트로트를 가르쳐준 할아버지

조문 온 형들에게 "슬프지만 참는거야" 했지만

국화꽃 둘러싸인 영정 안고 펑펑 울었다

남진 주현미도 반하게 한 천재소년

"비결요? 너무 관리하지 않는 거요 ㅋㅋ"


“창원 가면 고기 사줄게.”

열네 살(신문 나이론 아직 열셋이다), 이제 갓 ‘중딩’이 된 아이가 준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한 다섯살 많은 형을 품에 안고 다독이며 말한다. ‘위로주’ 아니, ‘위로 요구르트’ 하나 걸칠 기세다. 지난 14일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중학교 가니까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는 정동원이니, 매번 “형아~”라고 부르며 따르던 열아홉 남승민에게 이젠 형 못지않은 늠름한 ‘형아미(美)’를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하기야 정동원이 본선 진출 당시 ‘승민이와 국민손자들’로 경연 준비하면서 아홉살 홍잠언과 베개싸움이니 뭐니 투닥투닥 거리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 남승민에게 10년쯤 뒤에나 맛볼 수 있을 ‘독박 육아’의 고통을 선사하는 주역이었으니, 그때 승민이 고생을 생각하면 고기 열근은 사줘야 할 듯도 싶다.

방송 전부터 할아버지 투병 사실이 알려져 아픔만 가득할 것 같더니, 경연 중에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릴 땐 세상 천사가 따로 없다. 노래가 끝나면 항상 ‘90도 배꼽인사’로 공손하게 인사한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좋아하는 가수 만나면 설레하고 신나하는 건 보통의 아이들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또래보다 좋아하는 가수의 나이가 ‘살짝’ 많을 뿐. ‘여자사람친구’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여자친구가 없는 건 BTS 노래를 ‘트로트삘’로 부르기 때문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도 있다.

당장 아역배우 해도 모자람 없는 귀여운 외모에 남다른 비율과 특유의 해맑음은 ‘트롯왕세자’ ‘하동프린스’ ‘갓기(god+아기)’란 별명을 탄생시켰다. 진짜 무기는 한(恨)이 서린듯 사무친 감정을 함뿍 담았다가 툭, 하고 털어내는 듯 담백한 목소리. 그 누구도 아닌, 정동원만의 오롯한 창법이다. ‘보릿고개’에서 ‘청춘’ ‘희망가’를 거쳐 ‘우수’로 다시 확인하는 그의 감정선은 겪어보지 않고도 이미 겪은 듯한 그의 예술적 상상력과 곡 해석력을 읽어낼 수 있다. 처연하고 구슬프다.


◇‘미스터트롯’ 최고의 ‘케미요정’

정동원에게 무대는 치열한 경쟁이 아니다. 형아, 삼촌들과 무대에 서는 게 그저 신날 뿐이다. 본선 3차 에이스 전에 앞서 긴장한 김호중에게 “우리 점수 높으니까(당시 1위) 실수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우쭐해 하다가도, ‘뽕다발’ 팀 임영웅이 목소리로 시를 쓰는 듯 ‘어느 60대 노부부…’를 담담히 부르는 무대를 보면서는 “아, 1000점 넘겠다(만점이 1000점이다)”라며 감탄한다. 임영웅이 ‘진’으로 호명되자 임영웅 팔뚝을 ‘부비부비’ 쓰다듬으며 또 신이 난 표정으로 응원한다. 카메라는 레전드 무대 전 대기석에서 정동원이 임영웅 옆에 앉아 둘이 똑같은 포즈로 손을 V자로 턱에 괴고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을 포착한다. 포켓몬스터 ‘파이리’ 닮은 인형 같은 미소까지 곁들여지니 ‘좋아요’가 쏟아질 수밖에. ‘유튜브 댓글 읽기’에서 귀여움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관리 너무 많이 하면 안돼요. 세수하고 대충 로션 바르고…하하!”라고 얼굴을 부비대는 답변에 듣는 이모들, 그 자리에서 녹다운이다.

‘패밀리가 떴다’팀이 선보인 ‘젊은 그대’ 무대에선 폭발적 성량의 ‘형아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귀가 탁 트이는 고음의 화음을 쏟아내며 듣는 이를 놀라게 했다. 준결승 진출에서 “찬원이형~”이라며 안기는 포즈나, 레전드 무대 예고에서 듀엣전을 펼치는 장민호에게 달려가 유치원생처럼 찰싹 안기는 모습 등등 그 누구의 옆에 있어도 명장면을 만드니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최고의 ‘케미 요정’이다.


마냥 순진무구해 보이면서도 무대에 오르면 ‘장인’으로 변한다. 남진을 ‘레전드’로 ‘영접’하고는 자기보다 40년 먼저 태어난 영화 ‘형수’(1967)의 내용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씨익 웃더니만, 형수의 주제곡 ‘우수’를 구슬프게 노래한다. 팬들은 정동원이 전생에 ‘색소폰 장인’ ‘드럼 장인’ ‘대중가요 장인’ 등등을 겪은 뒤, 인생 열두 번 산 듯한 모든 장점을 모아 이생에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들 하니 이 아이의 감성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슬프지만 참는거야”

캄캄한 무대에 선 정동원을 희미한 불빛이 비춘다. 시계를 돌려 무대는 지난 13일 방송된 본선 3차전 ‘희망가’. 청아한 피아노 선율이 정적을 깨더니 어둠 속 한 줄기 빛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풍~진 세상을 마안나았으,니….” 최소화된 반주에 더 크게 공명하는 정동원의 담담히 감아치는 목소리는, 눈물이었다. 호흡은 감정이었고, 숨결에 실린 한(恨)이 마디마디 흘러내렸다. 무대 위 보랏빛 슈트의 정동원은 연분홍빛 만발한 매화와 어우러지며 한때 젊었던 그 시절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고, 어느덧 덧없이 가버린 세월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고, 아니 ‘무엇이었냐고’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정동원이 ‘내 심장’이라고 불렀던 최고의 친구이자, 영원한 지지자이며 오롯하게 의존했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 그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보는 이 모두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모든 공연을 함께 다녔던 할아버지 정윤재씨가 폐암 말기로 투병하면서 식당을 하던 할머니도 간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침마다 한살 터울 남동생을 등교시키고, 식당 일도 대신했던 정동원이다. 견뎌내기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조부상을 당한 뒤 장례식장에서 누구보다도 의연해 보였던 정동원은 “슬프지만 참는 거야. 울면 할아버지가 안 좋아해”라며 보는 이들이 대신 울게 만들었다.


정동원은 조부모 손에서 컸다.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곁을 떠나면서 경남 하동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부산에서 사업하던 아버지는 동원이와 동생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정동원은 마음을 닫았고, 사람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랬던 동원이를 사람들 앞에 서게 한 것이 할아버지와 트로트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던 할아버지는 동원이에게 악기를 쥐어줬다. 연습실도 만들어줬다. 동원이가 빠져든 건 드럼과 색소폰이었다. 어찌나 연습광이었던지 드럼이 세 번이나 부서져 바꿔야 할 정도였다. 색소폰을 너무 많이 불어 입술에 피가 흥건했는데도 휴지를 물고 입에서 떼지 않았다. 정동원에게 트로트는 심장 박동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과거 방송에서 “동원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 마음을 열었다”고 밝혔다.


정동원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은 지난 1월 중순 알려졌다. 과거 KBS ‘인간극장’에서 폐암으로 투병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1억 주사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꼭 할아버지 낫게 해 드릴 것이다”라고 했던 동원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목이 쉬도록 마음껏 부르고, 전국 방방곡곡 행사하러 다니며 더 즐겁게 공연을 했던 것도 할아버지 투병 비용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지난 1월 2일 미스터 트롯 첫 방송에서도 “많이 아프신 할아버지한테 TV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할아버지 애창곡인 진성의 ‘보릿고개’를 선택했던 정동원은 빈소에서 할아버지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청춘’과 ‘님은 먼 곳에’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열네살 ‘스펀지’ 정동원이 그리는 성장드라마…보내면, 채워진다.

‘미스터트롯’은 정동원에게 또 하나의 성장드라마다. 그 사이 초등학교도 졸업했고, 실제 경연하면서 몇 달 사이 4㎝나 훌쩍 컸다. 초반보다 다소 소리도 굵어지고 저음도 훨씬 정확해 졌다. 그래도 ‘레전드 남진’ 팀 인원 조정을 위해 ‘가위바위보’에 이기자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스프링처럼 하늘을 날아올라 무릎으로 착지하니 아직 커도 한참 더 클 것 같다. 누구한테 따로 배우지 않고도 유튜브를 통해 악기 다루는 법과 노래하는 걸 배웠다고 하는 ‘트로트 천재’ 정동원은 형아 삼촌들 몸짓과 무대 매너도 스펀지 마냥 쭉쭉 빨아들인다.


동원이가 마이크를 제대로 잡은 건 2년 남짓이다. 동원이의 실력은 하동을 금세 들끓게 했다. 동네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고, 동네 노래자랑을 시작으로 2018년 6월 전국노래자랑 함양군편에 나가 우수상을 받았다. 색소폰 앙코르도 했다. 새빨간 뽀글머리도 눈에 띄었다. 동네 할머니 패션 같은 모습에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 당시 전국노래자랑 1~2차 예심 도전 모습을 담은 유튜브는 500만 뷰어를 기록했고, ‘트로트 신동’ ‘트로트 영재’라는 찬사가 따라다녔다. ‘정동원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팬클럽이 생겼고, 회원들은 정동원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 열띤 응원을 했다. 지난해엔 신인가수 유산슬(유재석)과 합동 공연을 하며 ‘전국구 스타’임을 각인시켰다.


한뼘 큰 체격 이상으로 그의 마음도 단단해졌다.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빈자리엔 형아 삼촌들이 자리하고 있다. 온전히 보낼 수 있기에 채울 공간도 생긴다. ‘희망가’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남긴 메시지 같다는 팬들의 반응을 빌자면, 지난해 말 방송된 SBS ‘영재발굴단’에서 투병하던 할아버지를 위해 부른 ‘눈물비’(원곡자 홍진영)는 정동원이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송시(頌詩)였다. “눈물비 주루루 내리면 내겐 우산 같던 한 사람. 세상 아픔들을 대신 맞아주고 나를 지켜주던 한 사람. 미안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처연한 정동원의 목소리를 타고 눈물비의 가사가 애잔하게 하늘을 향해 퍼져간다. 동원이에게 할아버지는 우산 같던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폐암 말기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방문을 닫고 이틀을 나오지 못했던 동원이로서는 대중 앞에서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정동원은 요즘 유튜브 공식 채널인 ‘정동원티비’를 열었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영상을 모은 ‘눈물비’ 뮤직비디오 영상 속에서 동원이는 여기서 처음으로 소리내어 펑펑 운다. 새하얀 국화로 장식된 할아버지의 영정을 안고서다.